최근의 떼법과 법의 기본에 대한 소견

생각하건대 법은 기본적으로 사실과 당위라는 두 세계를 매개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법은 자칫 대립되기 쉬운 현실과 당위를 조화를 이루게 함으로서 법적 평화를 이루는것을 그 목표로 삼는다. 만일 어떠한 법이 이 조화를 이루는데 실패한다면 그 법은 법의 본질을 다하지 못하였다고 생각될 수 있다.

예를 들어한번 들어보자.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하며 거짓말을 할 경우 징역 3년형에 처한다고 생각하여보자. 이 법의 당위는 매우 훌륭하다. 우리네 객관적인 도덕법칙에 비추어 봤을 때거짓말은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는 행위이며 자신의 양심을 어기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이 법이 시행될 경우 수십 수백만이 감옥에 갈것이며 결과적으로 이법을 준수하는 사회는 끔찍한 불행을 겪게 될것이다. 즉 도덕을 엄격하게 준수할 것을 강요한 결과 사회질서가 붕괴된 것이다.

반대로 현실속에서 살인이 존재하니 살인을 처벌하지 않겠다는 사회가 있다고 가정하자. 이런 경우에도 그 사회는 살인마들에 의해 끔찍한 불행을 겪게 될 것이다

이렇듯 입법자와 법을 해석하는 판관은 현실과 당위 모두를 언제나 염두에 두어야만 한다. 즉 당위적으로 내가 추구자 하는 가치가 맞는지를 살피고 이후 내가 추구하는 가치가 현실에 부합하는지를 반드시 고려해야한다. 그래야만 법은 사회를 평화롭고 번영이 있는 길로 안내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의 법들을 보면 당위에 목숨을 걸어 현실을 보지 않는 법들이 자주 보인다.

어린 아이가 차에 치였으니 이러한 비극을 막기 위해 스쿨존에 사고만 나면 징역형을 살린다거나, 여자 몇명이 몰카에 희생되었으니 사실상 음란물을 시청, 소지를 막는다는가 하는 법등.

이러한 법들은 물론 당위적으로는 나름 괜찮은 법들이다. 어린아이는 약자임으로 어린아이의 보호를 해야한다는 당위, 여성들이 몰카에 희생됨으로 몰카를 완전차단 하기 위해 불법촬영물을 시청하는것 조차 막는다는 당위적으로는매우 훌륭하다. 당위에 있어서 누가 그 태클을 걸수있겠는가?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매우 타당하지 않는 법안이다. 아무리 규정속도를 지켜도 불쑥 튀어나오는 어린 아이는 막기 어렵고 불법촬영물을 현 규정처럼 의도하지 않는 배포까지 불법촬영물로 규정할때 그 불법촬영물 금지 저촉에 걸려들지 않는 사람들이 누가 있겠는가?

우리가 실컷보는 히xx, 모모xx 에리카 영상물 모두 당사자들이 불법으로 배포하는 걸 원하지 아니하는 것들이며(설마 당사자들이 공짜로 한국이란 땅에 p2p로 은밀히 배포되는걸 원하겠는가?) 인스타그램의 범람하는 수많은 사진들이 본인에 의해 촬영된것인지 촬영되지 아니한 것인지는 무엇으로 알겠는가? 설령 모든 현실상의 문제가 해결된 뒤에도 수시로 있을 검열은 어이 하겠는가?

이러한 법들은 앞서 언급했든이 현실에 부합되지 아니하며 법적 평화에 심각한 타격을 가지고 온다. 따라서 제대로 된 법이라고 할수없다.

문제는 매스미디어를 통해 이러한 법의 당위나 현실의 한쪽면만 보고 한쪽에 과도한 힘을 실어주는 국민들이 존재한다는것이다. 이를 어찌할까?





덧글

  • 김대중협정 개정 2020/05/15 02:55 # 답글

    법을 만드는 사람은 선거에 의해 뽑히니 그 사람들이 대중의 원초적인 정서에 편승하는 면이 있죠.
  • 까진 산타클로스 2020/05/15 12:50 #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의 가장 큰 모순이 거기에 있죠. 자유주의를 바탕으로 한 법치주의는 개인의 이성을 강조하나 민주주의는 민중의 감성에 휘둘리는 면이 강합니다. 요즘들어 대한민국 사법과 입법은 어디까지나 민중의 눈치를 보는게 강해져서 감성에 이리저리 휘둘려다니죠 ㅠ
  • 2020/05/19 09:11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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